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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자연과 어우러지는 문화·국방모범도시 충청남도 계룡

계룡의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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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이래 계룡산 유역은 1천 수 백년간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항상 중심적인 거점이 공주(公州)였다. 그러나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고, 다시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계룡산 지역의 중심은 전통도시 공주로부터 신흥도시 대전으로 점차 옮겨지게 되었다. 특히 호남선 개통과 함께 대전이 경부·호남선의 분기점이 됨으로써 이 같은 변화는 급격히 진전되었고,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읍에서 대전읍으로 옮겨지면서 충남의 중심권이 계룡산의 서부지역에서 동부권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대전은 1948년 시(市)로, 1989년 1월 1일 직할시로 승격되어 현재는 광역시로 중부권 중심지도시로 비약·발전하였다. 이에 따라 그 외곽에 위치한 계룡산은 중부권의 휴식처와 관광명소로서 각광받게 되었다. 1968년 12월 31일 전국 두 번째로 한려수도와 함께 61.0㎢ 에 달하는 지역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이다. 아울러 당국은 1975년 계룡산 종교정화사업을 벌여 신도안을 중심으로 한 계룡산의 신흥종교 교단들을 강제 해체하기 시작했다.

근년 계룡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고조시킨 사건의 하나는 제2의수도 이전사업이었다. 관심의 초점이 된 새로운 수도의 위치는 비밀사항이었는데, 당시 세간에서는 행정소도의 위치에 대하여 계룡산 주변지역이 주로 거론되었다. 행정수도 이전계획은 숱한 억측과 소문, 유언비어대로 극비에 붙여진 채 신도안 부남리에 거대한 팔각형의 초현대식 건물(신도안 송정지역 사람들은 지금도 팔각정이라고 부른다)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새로이 들어선 노태우 대통령이 수도이전사업을 백지화함으로써, 결국은 육·공군 고급장교 일부가 이주를 위해 현지를 최초 답사할 당시만 해도 2층에 국문회의실 현판과 함께 탁자와 의자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한다. 이로 볼 때 6공화국의 삼군본부 이전은 갑작스럽고도 의외의 결론이었다고 보여진다. 그리하여 정부는 620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삼군본부 이전계획을 수립하여 1980년 7월 1일부로 육군본부와 공군본부를 이전하고, 이어서 1993년 해군본부가 입주하게 되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군통수부인 육·해 ·공군 본부가 계룡대라는 명명하에 신도안 지역에 함께 들어서게 되었다. 이와 아울러 신도안 주변에 신시(新市) 건설을 계획하여 1990년 2월 12일자로 충청남도 계룡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2003년 9월 19일 계룡시로 승격되었고, 군사 수도 및 문화도시의 면모를 갖춘 인구 10만 명 수용 가능한 계룡시의 건설작업이 진행중에 있다. 그리고 2011년까지 인구 15만의 첨단과학, 산업단지를 아울러 조성할 계획이다. 또한 신도시 건설에서는 도시골격에 풍수지리상 길지(吉地)의 면모를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룡산 신도안 개발과 함께 연계되어 주목되는 것은 대전 둔산 시가지에 건립된 정부 제3청사이다. 1992년 착공하여, 1998년 8월 10개의 정부기관 이전이 실시된 것으로 계룡산 동부지역이 부분적인 행정수도로 정착됐다. 계룡산은 고대 이래로 종교·문화적 성소(聖所)로서 발전하였으며, 때로는 정치수도의 입지로서 거론되기도 하였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전통문화의 유산을 바탕으로 한 관광지역으로 각광 받고 있으며, 근년 삼군본부 이전, 계룡시의 건설, 정부 제3청사 이전 등과 함께 군사적 혹은 정치적, 행정적 중요성이 다시 부각될 전망이다. 바로 이같은 추이를 목도(目睹)하면서 계룡산이 국가의 정치적 중심, 수도가 될 것이라는 정감록의 오랜 예언이 다시금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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