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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놀이

백중놀이

소재지
두마면 
문의처
042-840-2404 
소개
성종 24년(1494)부터 두마면 왕대리에서 전승해 오던 놀이로써 3년마다 음력 7월 15일 백중일을 기하여 백년대길, 세화연풍을 기원하던 두레싸움 성격의 민속놀이이다. 

상세설명

성종 24년(1494)부터 두마면 왕대리에서 전승해 오던 놀이로써 3년마다 음력 7월 15일 백중일을 기하여 백년대길, 세화연풍을 기원하던 두레싸움 성격의 민속놀이이다.
1942년 전승되어왔던 이 놀이는 그후 40여년간 중단되었다가 마을 원로들의 고증을 거쳐 1989년 충청남도국악협회 충남지부 김용근 씨가 재발굴한 것으로 협동과 근면정신을 일깨우고 권선징악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농민들의 한마당 놀이이다.
현재 논산시 연산면에서 주관하여 연산 백중놀이가 되었으나 원명은 왕대리 백중놀이이다.

<왕대리 백중놀이의 유래>
음력 7월 15일 「백종일」, 「백종절」 또는 「망혼일」이라고 한다. 이날 절에서는 스님들이 새로 나온 백가지 곡식과 과일 등을 차려놓고 재를 올려 부처에게 공양한다. 신라와 고려때는 우란분회라 하여 속인들도 공양을 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서는 주로 승려들이 해왔다.
이 행사는 보름달이 뜬 달밤에 과일, 채소, 술, 밥, 등을 차려놓고 혼을 부르는 것으로 망혼일이라고도 부른다.
백종날에는 머슴이나 일꾼들을 하루 쉬게 하며 주인집에서는 머슴들에게 새로운 옷한벌과 돈을 주는데 이 돈을 「백종돈」이라 한다. 농촌에서는 백종일을 전후해서 장이 서는데 이 장을 「백종장」이라 하고 마을이나 백종장에서는 씨름판 등 각종 민속놀이도 펼쳐지고 흥행단도 몰려 들어 머슴들은 백종돈을 가지고 백종장으로 가서 먹고 마시며 하루를 즐기는데 이날을 「머슴날」이라고도 한다.

<왕대 백중놀이 내용>
논산군 두마면 왕대1리(왕대) 총좌상을 비롯하여 왕대2리(은동, 두계1리(팥거리), 두계2리(구로실), 입암(선바위) 4개 동리에서 지역 좌상 1명씩이 인솔하여 음력 7월 15일 백중일에 동리 표시기, 영기, 용기, 농기, 오방기, 장나팔, 태평소 등의 순서로 하여 총좌상의 동리인 왕대리에 집결한다.
이 때 기수와 풍장군들은 전립을 쓰고 농악을 치며, 농군들은 호미, 삽, 낫 등의 농기구를 휴대하고 동리마다 짚 3단씩을 지게에 짊어지고 청황 등을 들며 아낙네들은 농신제에 쓰여질 떡과 제물을 들고 각 지역 좌상들을 따라 간다.
총좌상기는 쌍용이 그려져 있고 지역좌상기는 한마리 용이 그려져 있는데 지역좌상기는 총좌상기인 쌍용기 앞에 동리별로 정열한다.
지역 용기는 공원의 구령에 따라 순서대로 쌍용기에게 두번씩 절을 한다. 쌍용기는 상견례의 답례로서 지역 용기 장목에다 백색의 긴 수건을 달아준다.
이와같이 상견례 의식이 끝나면 신장대 모양으로 만든 농신대에다 오곡 주머니 4개를 묶고 집단을 한데 모아 세우고 외약 새끼줄로 묶은 다음 집둥체의 상 중앙에 농신대를 꽂는다. 이때 아낙네들은 준비한 제물로 제상을 차려 놓는다.
쌍용기를 비롯한 각종 기를 병풍식으로 둘러 세우고 지역좌상들이 제관이 되어 축문을 낭독하며 농신제를 지낸다.
연산 백중놀이는 이 때에 하던 놀이로 두마면 왕대리를 중심으로 연산면 일대에서 전승되어온 민속놀이이다.
이 놀이는 내용이 다양하고 다른 지방의 백중놀이와 달라서 향토사적 측면에서도 아주 좋은 놀이이다.
조선조 성종때부터 좌의정을 지낸 서석 김국광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묘역이 있는 두마면 왕대리와 인근 27개 동리 사람들이 농사일이 거의 끝나는 음력 7월 15일 백중일에 김국광의 묘에 참배한 후 인근 두계천변에 모여 난장판을 벌리고 한마당 축제로 벌였던 민속놀이이다.
이후 연산일대 광산 김씨들이 백중일에 연산장터에 모여 백중놀이를 벌렸고 한창 성행할 때에는 전국의 한량들이 모여들어 거대한 민속 축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왕대리 김국광의 마을이라 해서 좌상(좌의정)의 마을이라 하여 용기가 있었으며 각 마을마다 두레조직의 우두머리격인 좌상들의 인솔하에 모여 각종 제의식을 마치고 효자 효부에 대한 표창과 불효자에 대한 벌을 논했으며 그해 농사를 잘 지은 머슴을 선발하여 푸집한 상을 주기도 하였다.
경비는 광산김씨 집안에서 부담했다 하며 백중놀이가 끝나고 나면 광산김씨 집에는 된장 등 부식물이 바닥이 났다하니 놀이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연산 백중놀이는 일제시대에도 계속되어 오다가 1942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당시 1942년 총좌상이던 김창수씨는 사망하였지만 전수자로서 유일하게 김복수씨가 생존해 있어 47년만인 1989년 연산면 고양리, 표정리, 관동리, 백석리, 주민들에 의해 발굴 재현하여 제3회 놀뫼 향토제에서 시연하였으며 1990년 11월 25일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31년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종합 우수상인 국무총리상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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