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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놀이

백중놀이

소재지
두마면 
문의처
042-840-2404 
소개
성종 24년(1494)부터 두마면 왕대리에서 전승해 오던 놀이로써 3년마다 음력 7월 15일 백중일을 기하여 백년대길, 세화연풍을 기원하던 두레싸움 성격의 민속놀이이다. 

상세설명

<백중놀이의 유래>
백중의 전통은 불교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날 아귀보를 받는 중생의 구제를 위해 우란분재를 열었는데, 불교의 유입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고려시대에는 왕실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일반화된 행사였다고 한다.

이처럼 불교의 명절이었던 백중은 조선 후기에 이앙법이 일반화되기 시작하면서, 농업과 연관된 세시 행사로 자리 잡았다. 논농사에서 가장 고된 일인 김매기는 대개 7월 보름을 전후하여 끝나는데, 농민들은 이를 기념하고 즐기기 위해 그들만의 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백중과 겹쳐짐으로써, 불교 축제인 백중에 농민 축제의 성격이 덧붙여진 것이다.

백중놀이는 고된 농업 활동을 일단락 지은 농민들이 펼치는 축제로, 축제의 주체는 머슴과 소농이었고 지주 부농들은 이들을 후원하는 입장에 있었다.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머슴과 소농들은 맘껏 먹고 마시면서 신명을 풀어냈다. 지주와 부농들은 이를 용인하고 후원함으로써, 고용인과 피고용인, 지주와 소작인이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왕대리 백중놀이>
서석 김국광은 조선조 성종1년 좌의정에 오르고 그해에 명나라 사은사로 다녀오고 다음해에 좌리공신(佐理功臣) 1등에 책훈되었으며,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해지었다. 1478년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지내다 1480년에 졸하여, 왕대리 모역에 입장하고 매년 한식, 단오절에 제향을 올리고 3년마다(子.卯.午‘酉)해에 별사로 모시고 있다.
서석 김국광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묘역이 있는 두마면 왕대리와 인근 27개 동리 사람들이 농사일이 거의 끝나는 음력 7월 15일 백중일에 김국광의 묘에 참배한 후 인근 두계천변에 모여 난장판을 벌리고 백년대길, 세화연풍을 기원하던 두레싸움 성격의 민속놀이다.
한창 성행할 때에는 전국의 한량들이 모여들어 거대한 민속축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왕대리는 김국광의 마을이라 해서 좌상(좌의정)의 마을이라 하여 용기가 있었으며, 각 마을마다 두레조직의 우두머리격인 좌상들의 인솔 하에 모여 각종 제의식을 마치고 효자, 효부에 대한 표창과 불효자에 대한 벌을 논했으며, 그해 농사를 잘 지은 머슴을 선발하여 푸짐한 상을 주기도 하였다.
그 당시 행사 경비는 광산김씨 집안에서 부담했다 하며 백중놀이가 끝나고 나면 광산김씨 집에는 된장 등 부식물이 바닥이 났다 하니 놀이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계룡에서는 계룡시엄사예술단에서 2015년 뮤지컬 ‘왕대리라~樂’이라는 무대 창작품으로 제작하여 매년 백중일에 시연하며, 보존·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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